posted by 매드마우스의 놀이터 2021. 3. 29. 23:25
  • 공식명칭: 파르투갈령 암골라(구 음동고 왕국)
  • 위치: 아키프라 남서부
  • 수도: 카쿨로 카사바
  • 정치체제: 전제군주제
  • 국가원수: 음골라(국왕) 
  • 공용어 : 북분두어
  • 종교: 음동고 토착 신앙
  • 거주종족: 분두족, 임방갈라족

 

1. 역사

음동고 왕국이 역사에서 처음으로 기록된 것은 16세기로, 당시엔 콩가 왕국의 속국으로 음골라 킬루안제가 건국했다고 전해진다. 음동고는 주변 왕국과 대립하면서 콩가 왕국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었으나, 16세기에 들어서서 파르투갈에 대사를 보내서 선교사를 요청하고 콩가 왕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파르투갈은 선교사들을 보냈으나, 콩가 왕국의 압력에 의해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음동고 왕국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대사를 보내서 세례를 받는 것을 대가로 군사적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파르투갈 왕국은 2차에 걸쳐서 원정대를 보냈고, 디아스 데 노바이스라는 인물이 콩가 왕국과의 합의 끝에 루안다에 도착하여 음동고의 국왕과 새로운 외교관계를 가지게 된다.

 

암골라를 정복하는 것이 목표였던 파르투갈군은 콩가와 은동고 모두와 동맹을 맺어서 용병으로 활약했으며, 16세기 말에 파르투갈군이 마산가노를 공격하여 그곳에 요새를 건설하자 수많은 소바들이 점차 포르투갈에 충성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해안 지역들이 파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다. 파르투갈군은 이 기세에 힘입어 음동고의 수도를 공격했으나, 하지만 음동고는 인근의 왕국들과 동맹을 맺어서 반격을 가했고, 이에 파르투갈은 잠깐이나마 물러간다.

이후 17세기 초까지는 파르투갈과 음동고 사이의 불안한 평화가 유지되었으나, 파르투갈은 캄밤베에 요새를 세우고 콴자 강을 따라서 계속 영역을 확장해나가기 시작했고, 콴자 강 남쪽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선 음동고와의 충돌이 불가피하단 것을 깨단고는 콴자 강 남쪽에 있던 유목민들과 접촉하여 이들의 도움으로 음동고 북쪽으로 식민지를 확장했다.

 

이후 파르투갈군은 음동고를 공격하여 음골라를 피난가게 만들었고, 수천 명의 포로들을 사로잡았다. 파르투갈은 뒤이어서 괴뢰정권을 세우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음동고와 화친하였다. 음동고 측은 파르투갈의 음동고 침공의 거점인 암바카 요새에서의 철수와 포로들의 반환, 음동고를 쑥대밭으로 만든 유목민들을 떠나도록 할 것을 요구했고, 그 대가로 왕의 수도 복귀와 파르투갈과 군신관계를 맺고 매년 100명의 노예를 공물로 바친다는 조건의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당시 파르투갈 총독이 콩가 왕국과의 전쟁에 휘말리는 바람에 암골라 식민지에서 추방당하게 되어 협정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였다.

파르투갈의 조약 불이행으로 인해 당시 음골라였던 응골라 음반디는 큰 타격을 입었고, 그로 인해 누이인 은징가 음반디가 실질적으로 음동고를 맡게 되었다. 이후 파르투갈은 은징가 음반디와 협상을 재개하여 포로 반환을 거부하고 은징가가 먼저 파르투갈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은징가는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전권을 확립하고 포로들이 돌아와야만 한다고 응답했고, 이로 인해 전쟁이 터졌다.

 

파르투갈군은 은징가를 축출해내는데 성공했으나 그녀를 잡지 못했고, 이후 은징가가 물러났음을 선언하면서 노예 출신인 필리페 하리 은골라를 새로운 음동고의 왕으로 선출한다. 은징가 음반디는 하리의 즉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하리와 파르투갈의 통치에 반대하는 세력의 지원을 받아서 군세를 얻고 두 번째로 포르투갈과 전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또다시 격파당한 은징가는 가까스로 생포되는 것을 면한 채 도주하였다.

이후 은징가는 한때 음동고를 침략했던 임방갈라족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지원을 얻어 새로운 근거지가 될 마탐바 왕국을 정복하였다. 이후 파르투갈은 오라녜군과 동맹을 맺은 은징가의 군대에게 큰 패배를 당했고, 결국 파르투갈은 끈질긴 은징가의 공격에 그녀를 은동고와 마탐바의 여왕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후 은징가 여왕이 죽고 난 뒤에야 파르투갈은 은동고 왕국을 점령할 수 있었다.

 

2. 사회 및 문화

음동고 왕국은 736개의 작은 정치단위로 나뉘어져 있었고, 중심도시인 음반자와 그 음반자를 둘러싸고 있는 마을들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음동고의 수도는 현재 은달라탄도 근처의 고원에 있는 '카쿨로 카사바'로, 왕은 '음골라'라고 불리고, 귀족인 '마코타'들로 이뤄진 의회로 통치했다.

 

음동고 왕국의 계급으로 사법담당인 '텐달라', 군통수권직인 '은골람볼레'가 존재한다. 평민층으로는 '아나 무린다'와 '자유민', 이지코(단수형은 키지코)와 농노 계급이 있으며, 하위 계급으로 아비카(단수형 무비카), 노예가 존재한다.

 

구성 종족으로 분두족과 임방갈라족이 존재한다.

 

 2-1. 암골라의 구성 왕국들

 (1) 마탐바 왕국
 마탐바 왕국은 남분두족이 세운 왕국으로, 19세기 후반에야 파르투갈 왕국에 정복당했을 정도로 오래도록 저항한 강력한 나라였다.

 마탐바 왕국이 역사 속에서 최초로 언급된 것은 16세기의 콩가 왕국을 통해서였으며, 16세기 중엽의 마탐바는 당시 십자교를 믿기 시작한 콩가에서 온 선교사들에 의해 설교가 허락되었으나 개종했다는 징후는 없었다.

 암골라 총독이 임방갈라들을 통해서 음동고를 공격하도록 지시하였을 때, 마탐바의 약탈도 허락하였는데, 이로 인해 수많은 마탐바의 분두족들이 세스파냐 식민지로 노예로서 팔려갔다.

 

 17세기에 은징가 음반디가 포르투갈과 싸우다가 패전하고 마탐바 왕국으로 도망쳤고, 마탐바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마탐바를 음동고 왕국에 편입시켰다.

 은징가 여왕은 사망할 때까지 두 왕국을 공동 통치하였으며, 그녀 사후에는 음징가 모나가 즉위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파르투갈의 프란시스코 구테레스에 의해서 축출당하게 되었고, 프란시스코는 카산제 제국과 전쟁을 하였으나 전쟁에서 패배하여 친척들과 함께 사망한다.

 

 이후 그 누이인 베로니카 1세가 즉위하였는데, 십자교도이면서도 마탐바의 독립을 지향한 그녀는 파르투갈의 침공을 막고자 루안다에 사절을 보내서 평화협정에 서명했고, 이를 위해 위카산제의 존속을 인정하고, 파르투갈인 포로 석방 및 파르투갈인들의 자유왕래와 선교사 입국을 허가하였다. 이로 인해서 마탐바와 파르투갈 사이는 한동안 원만해지게 되었었다.

 

 그러나 그녀가 사망하고 난 이후 마탐바 왕국은 다시금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려고 하였고 이윽고 파르투갈군이 재침하여 마탐바가 파르투갈의 속령이 되었음. 그 이후 마탐바 왕국은 여러 번 끈질기게 저항하였으나, 결국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완전히 식민지 상태가 되고 만다.

 (2) 카산제 제국
 17세기 초에 임방갈라족이 건설한 제국으로, 강력한 군국주의 제국이다. 건국시조는 '전사 카산제'이며, 통치자는 자가라고 불린다.

 

 이들은 주변 국가들과의 무역으로 번영을 누렸으며, 그 과정에서 파르투갈과 노예 교역을 하게 되면서 이 두 국가 간의 관계가 시작된다. 이후 파르투갈에 의해 용병으로 고용되어 음동고와 마탐바 왕국 공격에 활용되어졌는데, 임방갈라 용병들은 파르투갈군의 보조부대로 복무하는 것으로 파르투갈 군대에서 활동하였다.

 일대의 다른 왕국들이 전쟁에 말려들 때마다 카산제 왕국은 내륙과 파르투갈의 암골라 식민지 사이의 통상로를 독점하여 제국의 수도에서 파르투갈의 화포 및 의류와 카산제 제국이 주변에서 잡아들여온 노예들이 교환되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독점도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선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윽고 19세기 중반에 파르투갈에 점령되어 식민지 신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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